2015년 9월 17일 목요일

167광수 백설희

167광수 백설희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여광수이야기 (167''광수)포착.

 

김제갈윤님께서 불철주야 끈기있는 탐색으로 찾아서 올린 사진에 나타난 3인의 위장통곡녀들,

김제갈윤님의 포기없는 불굴의 애국정신에 부응하고 그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사진에 나타난 위장통곡녀들을 며칠동안 집중탐색한 결과 그 동일인들을 포착하였습니다.

 

특히 백설희의 두 비교이미지는 특징점으로서 심한 곱슬머리와 특히 이마 전체의 발제선

완벽하게 일치하며, 다른 사진에서의 크로스체크로 콧등의 약1Cm길이로 세로로 길게 나있는

매우 옅은 기미점과 코끝의 오른쪽에 나있는 직경 약 2mm 정도 크기의 둥근 기미점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하여 동일인으로 판독하였고, 더욱 더 확실하게 동일인임을 읽어내기 위해

이마전체의 등고면을 부분부분 나누어서 미세 잔근육들의 위치와 면적, 크기 등의 등고선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확인한 결과 미세잔근육들의 등고선이 모두 일치하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백설희 (167''광수)로 명명합니다.

백설희는 북한최고의 생물학 과학자로 명성을 얻다가 북한특수군의 일원으로 5.18 광주에

공작조 광수로 남파되어 북한정권에 충성하였으나 김정일의 악랄한 폭정과 모함으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히는 등 북한정권의 배신과 폭정을 모두 겪은 여광수로서 백설희의

인생역정 자체가 김일성 김정일의 천인공로할 만행을 대변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인터넷에 떠 있는 백설희에 관한 어느 탈북자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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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영웅에서 간첩의 애첩으로 몰린 백설희| 탈북자이야기|2009.03.16. 20:39

백설희를 비롯한 북한의 과학자들과 인민들은 김정일을 하늘처럼 믿고 따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북한농업과학원 식물학연구소의 백설희박사라면 북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한때

기름작물(품종개량) 연구성과로 북한에서 숨은 영웅의 전형으로 이름 날리던 여성과학자이다.

 

백설희는 1960년대 중엽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농업과학원식물학연구소에 배치되어 출가도 안한 처녀의 몸으로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연구사업에만 몰두했다. 그는 고심어린 연구 끝에 성공하여 1979년 김일성의 접견을 받고 단독기념촬영을 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고 그러한 공로로 농업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그와 함께 198010월 북한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으로 , 노력영웅으로, 인민과학자로, 216번호를 단 벤츠를 선물 받는 등 북한 과학자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정치적 명예와 부를 누렸다.

 

당시 그의 연구 성과는 북한의 <식용유>문제의 주요한 고리를 해결한 대단한 과학연구성과로

선전되었고 그를 원형으로 영화 <열네번째 겨울>까지 만들어져 북한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모델로서도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기름골을 통하여 <식용유>를 해결할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북한당국은 풍치 수려한 대성산식물원 안에 그의 이름을 단 3층 규모의 <백설희연구소>까지 차려주었고 전국의 곳곳에 수십정보의 농경지를 기름골연구기지로 정해 주었다.

 

백설희는 수령과 노동당의 배려에 감사하여 일생을 독신으로 과학연구사업에 종사할 결심을 굳히고 기름골 연구사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그가 연구한 우량품종의 기름골은 유전자조작의 어려운 기술적문제로 하여 초기의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계속되는 기름골의 퇴화로 하여 난관에 봉착하게 되며 끝내는 농경지가 제한된 북한의 실정에서는 실현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여 백설희는 기름골연구의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연구과제를 잡고 침식을 연구소에서 보내며 연구사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던 그가 1996년 당시 중앙당농업담당비서 서관희 사건에 연루되게 된다. 여기서 서관희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다.

1990년대 북한의 농업은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사회주의 배급제도는 완전히 무너지고 상상도 못했던 기아가 덮쳐 300만 명의 북한인민이 굶어죽게 된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금수산기념 궁전건설을 벌려놓고 또 적화통일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군수산업에 대한 투자만 계속했다.

 

이러한 고난 속에 인민들의 불만이 고조에 달하자 체제위기를 느낀 김정일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인민의 불만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사회안전부 정치부장 최문덕을 시켜 <심화조사건>을 조작,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아 처형했다.

 

첫번째 먹잇감으로 당시 중앙당농업담당비서 서관희가 간첩의 누명을 쓰고 공개 총살된다.

서관희가 1950년 후퇴시기에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전락 되였으며 농업담당비서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체계적으로 북한의 농업을 망쳐 놓았다는 것이다.

 

서관희 다음 대상은 바로 백설희 박사였다.

보위부의 예심을 거쳐 발표된 백설희의 죄목이란 그가 서관희의 애첩이며 그와 결탁하여 당의

농업정책에 커다란 해독행위를 가했다는 것이다.

하여 한때는 그렇게도 북한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숨은 영웅의 모델로 명성 높던 백설희는 하루아침에 반역자가 되었고 70고령의 그의 어머니와 동생, 백설희의 뒤를 잇겠다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그의 조카들과 군복무 중이던 막내조카까지 강제로 제대되어 강원도 천내군 천내탄광의 굴속으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4년 서관희 사건은 사회안전부 정치부장 최문덕의 정치적 야심으로부터 빚어진 날조극으로 재정리되었지만 그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거의 죽고 정치범수용소통제구역으로 잡혀갔던 수많은 가족들 가운데 돌아온 사람은 절반도 되나마나 했다. 지옥의 수용소에서 맞아죽고 굶어죽고 자살해죽었던 것이다. 백설희의 어머니도 천내탄광에서 굶어죽었다.

 

교활한 정치 사기꾼 김정일의 지시로 목란관에서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회가 진행되고

김정일의 위로친서가 전달되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지만 그들이 흘린 눈물은 사실 김정일에 대한 원한과 울분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녔다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사건당시엔 한치 앞도 분별 못하는 맹인이 되었냐며 터뜨린 분노의 눈물인 것이다.

 

기적으로 살아남은 백설희는 연구소로 돌아와 모든 명예를 회복했지만 폐인이나 다름없는 그는 매일 그 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백설희는 1996년 당시 자신을 악착스럽게 고문한 보위부의 인권유린에 대해 김정일에게 신소편지를 쓴다고 했다. 북한지식인의 정치적 순진함이라 하겠다. <심화조>사건이 김정일의 각본에 따라 연출된 하나의 살인극인데 신소를 한다니?

정말 어리석은 박사님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지금쯤은 백설희도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포악하고 즉흥적인 김정일의 묵인비호 하에 빚어진 90년대 <반민생단>사건이었다.

김정일은 자기의 권력유지를 위해 300만 명을 굶겨죽이고 그 원인을 순진한 지식인들에게 들씌워 무자비하게 처형한 희세의 살인마다. 백설희를 비롯한 북한의 과학자들과 인민들은 김정일을 하늘처럼 믿고 따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북한인민들의 김정일 정권을 향한 울분과 분노는 점점 다져지고 있으며 거대한 활화산이 되어

폭발할 그날은 머지않아 올 것이다.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166광수 리혜정

166광수 리혜정

위장통곡 공작중인 5.18 북한특수군 공작조 리혜정 포착되었습니다.
리혜정 (제166광수)로 명명합니다.

개별비교분석표는 우선순위에 따라 작업완료 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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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혜정
생년월일 : 연도미상
소속/직책 :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경력사항]
2014.04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2012.06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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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이 글을 박근혜 대통령께도 보고합니다 )  
 
1. 19458.15에는 해방의 기쁨으로 온 나라에 태극기 물결이 넘쳤었습니다.
그러다 8개월 후 38선 이북에선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련군 대위 김일성을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발(46.2.8)했던 소련군정이
친일관료와 지주들을 숙청하고 무상으로 빼앗은 토지를 북쪽의 소작농들에게
무상으로 분배(46.3.5)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소작농 입장이었다면
둥실 둥실 어깨 춤까지 추었을 것입니다.  
2. 1941년생인 필자는 당시의 태극기 물결에 함께 할 수 없었지만 75세를 넘기며 세계인의 눈으로 아니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식민지 땅에 태극기 물결이 넘치게 했던 최대 공로자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던 미국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 토지무상분배의 공(?)으로 소련군이 북한 해방군이 되고 감사의 대상인 미군에게는 오히려 일본을 계승한 대한민국 점령군이라는 북한 발 거짓 선전선동이 만들어진 이래 아직도 우리의 사회일각에서 통하는 듯한 현상을 바라보며 가슴을 때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3. 김일성 만세를 불렀던 북한 주민들의 운명이 바뀐 것이 오래전부터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상 분배된 개인소유 땅이 집단농장소유로 바뀌면서 그 농민들은 다시 그 땅의 노예가 되고 말았고 300만이 굶어죽어도 김일성 부--3대 세습독재에 데모한번 못한 채 자유 대한민국을 향한 탈북의 대열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김정은의 고모부는 물론 이름난 상층부 관리들 여러 명까지 까지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북녘 동토의 땅으로부터!! 
4. 무상몰수 무상분배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이 거짓에 속아 스탈린만세 김일성만세를 불렀던 결과가 오늘 비참해진 북한 동포들 불행의 시작이라고 볼 때 48.5.10 선거에서 뽑힌 198명 초대국회의 의결을 거쳐 토지의 유상인수 유상분배 정책을 택함으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를 굳게 닦았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혜안과 집념이 보다 큰 축복으로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5. 따라서 금년도 광복 70주년 행사에서는 세상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았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판단과 이 박사의 정책추진을 도왔던 혈맹의 동맹국인 미국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의 축제라도 있었어야 함에도 대통령께서는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며 김일성의 6.25 불법남침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중국의 항일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길을 다녀오셨습니다. 성과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6. 그러나 출발에 앞서 그 참석의 당위성을 밝히는 대국민 성명발표라도 있어야 했습니다. 만일, (평화)통일의 대박이 그 목표였다면 앞으로 있을 성명발표 때에는 통일대박의 성공필수조건을 국민들에게 속 시원하게 알려주시기를 바라며 역사적으로 남북분단을 초래하고 강요했던 다음 사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간곡히 건의 드립니다. 통일을 진정 앞두고 있다면 남북의 동포들이 다 같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 한반도를 점령했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38선 남과 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했던 상태에서 절호의 완벽한 통일기회는 UN감시하의 남북 국회의원 총선거(485.10 선거: 인구비례 북 100, 200)였다는 사실 
* 소련의 반대로 북한은 선거에 불참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에서 200-2=198 명의 제헌국회의원이 최초로 선출되었던 사실 (-2명은 제주도의 4.3무장폭동으로 발생)  
* 4.3폭동개시일 부터 5.10 선거일까지 발행된 당시 주요 신문의 제주발 기사에서 발견되는 선전선동 문구 몇 개: “목포까지 김일성군이 내도했으니 안심하라” “곧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실시된다.” “살인 현상금 순경 1만원, 형사 3만원, 총경 100만원” “친일경찰을 사살하라등등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 300
* 45920일에 북한 땅에 소련위성 국가를 세우라는 요지의 스탈린 비밀지령이 소련군의 북한 점령과 동시에 하달되었던 사실: 이 비밀지령으로 일본군의 항복접수와 전혀 관련 없는 북한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실시되고 1947121일에는 비밀화폐개혁까지 단행되었던 사실의 확인 (이 비밀지령은 구소련의 비밀해제로 일본 마이니찌 신문이 93.2.26에 최초로 보도
* 비밀화폐개혁은 용도 폐기된 조선은행권이 상당기간 대남공작금 전용을 허용하여 38선 이남에는 거금을 무상 분배받고 스탈린 만세, 김일성 만세를 숨어서 부르고 그 이후 북한의 세습독재에도 무조건의 절대충성을 강요받는 제 1세대  종북 원조가 되었을 가능성:  대한민국의 민주투사 명예를 얻고도 북한 동포의 자유와 인권에 절대 침묵하며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산업화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로 매도하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여러 형태로 부정하는 현상이 이를 증명합니다.    
7.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실의 확인과 검토도 없이, 국방부와 경찰의 입장과 주장을 배제하고 국군만을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몰아갔던 왜곡된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동의 서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보고서 작성 기획단장: 당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현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8. 왜곡된 진상조사 보고서의 채택을 거부하고 4.3위원을 사퇴했던 필자는 사퇴 4년 후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북한 대남공작 영웅의 찬양보도(“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97.5.26.)가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노 대통령의 6/15, 10/4합의로 이미 추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소한도 공식찬양한 대남공작의 중단만은 공식적으로 요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침묵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오호 통재라입니다!!  
9.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시백이 김구선생을 만나 자신을 김일성 특사로 소개하는 장면과 조선중앙일보광명일보10개 신문사를 운영했다는 기사 등을 발견하며 그가 “6.25 전쟁의 10대 불가사의의 환경조성에 기여함은 물론 제주 4.3장폭동시의 경찰관 살해 현상금까지도 조달하는 등의 대남공작활동으로 영웅 1가 됐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이 특집보도의 존재에 대한 침묵을 깨는 것이 국가안보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전파노력을 했으나 어느 주요 신문도 제 주장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역부족이었습니다.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1&uid=2228&page=1&key=&keyfield=  
10. 맹호부대 제 1진의 육군소위 월남참전으로부터 국방대학원 원장으로 현역을 마치고 예비역으로 재향군인회(회장 장태환)의 안보정책실장을 맡았던 연장선에서 국방부 위촉의 4.3위원이 되어 지금까지도 제주 4.3사건을 연구해야했던 필자의 눈에는 6.25 발발 전에 서울에서 활동했던 성시백(‘북한 영웅 1’) 2세들의 활동모습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11. 그렇게만 되면 광주의 5.18에는 제주의 4.3 때보다도 대 규모의 대남공작이 있었다는 제 주장에 쉽게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김정일은 광주 5.18사건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2차 판결(97.4.17)직후에 6.25 발발 직전까지 암약했던 성시백의 대남공작을 찬양하는 특별보도를 했던 것이니 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온 국민의 함성이 필요합니다
12. 최근 인터넷 상에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5.18 폭동의 전말에 관한 내용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도 정부기관은 물론 주요 신문과 방송들이 사실의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가운데 무한정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정론직필이 사명인 언론의 무책임, 무능입니다.  
아직은 통일대박을 상정하고 논할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한 더 이상의 침묵은 망국과 직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극을 방지하려면 비극적으로 생각하라”(Think tragically to avoid tragedy)는 서양 사람들의 격언을 믿고 힘든 표현을 하고 말았습니다만 우선 대통령께서 적극적인 시각을 보여 주셔야만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군과 언론도 저마다의 전문기능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군은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고 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도 하늘을 찌르게 될 것입니다
우선 대통령께서 김정은에게 18년 전인 1997526, 그의 부친이 노동신문 특집보도를 통해 공식인정 및 찬양했던 대남공작의 중단부터 공식적으로 요구하신 후에 당국 간 대화를 추진 해 주시기를 건의 드리며 그리고 5.18광주에 북한 특수전 부대 및 기타요원들이 대규모로 투입되었었다는 애국단체인 500만 야전군(www.systemclub.co.kr)의 목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지만원 박사를 잠시만 만나 주시더라도 상황은 반전 될 것을 믿습니다.  
애국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시는 것이 곧 구국의 길이라 생각하며 닥아 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함성의 힘으로 지난 70년간 피로 맺고 지켜 온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다지시는 성공을 거두어 주시기 바라며 두서없는 글 줄입니다.
2015. 9.15.
() 육소장 한광덕
()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2003.10.15.일 사퇴)
www.rokfv.com 인강칼럼

5.18광주 영상의 총체적 요약


5.18광주 영상의 총체적 요약
   
 
아래 영상들은 광주에 왔던 북한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고, 몇 명이나 되는지에 대한 감을 잡게 해준다. 전남도청이 북한집단에 의해 완전 장악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이들 틈에는 광주시민이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환경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5.18광주유공자들이 도청을 접수한 혁명의 주인공들이었다는 그동안의 거짓말이 아래 사진들에 의해 들통 난 것이다.
 
시체들을 523일까지 북한집단이 장악했고, 북한집단은 광주시민들을 절대적으로 배제한 후, 시민군 지휘부 행세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들이 523일까지 시체들을 장악한 것은 두 가지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독일기자라고 주장한 헌츠페터의 사진에 광주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는 쇼를 찍히게 하여, 선전 선동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 시체들 중에 북한 시체가 있는지를 끝까지 점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광주시민이 끼어들 수 없는 이유는 저들의 비밀유지 때문이다. 황장엽은 저들의 비밀을 눈치 챘을 것으로 의심되는 젊은 사람을 체포해다가 사살했다. 그 사진이 맨 아래에 있다. 이런 저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들의 틈에 광주사람이 끼어들 수 있게 허용할 수 있겠는가?
2015.9.16. 지만원
 
 
 
 
 

2015년 9월 13일 일요일

5.18북한특수군 공작조 로얄페밀리 성혜랑(제162광수)


5.18북한특수군 공작조 로얄페밀리 성혜랑(162광수)
 
무고한 광주시민을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M16소총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납치하고 고문끝에
이마에 권총을 쏘아 학살한 납치주범 양민학살 악질전범 황장엽을 옹호하는 탈북자들과
남한의 부역자들은 보아라.!
 
김일성의 여동생 김정숙, 김정일의 처형 성혜랑 등 로얄페밀리도 공작조의 임무를 주어
5.18 광주 북한특수군의 일원으로 남파시키는데 황장엽정도가 무엇이라고 남파명령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의 말이 곧 법으로 반대자나 탈북자들을 가차없이 총살시키지만,
남한은 판결형량이 사형선고 하나 뿐인 여적죄로 처형하는 법이 현행법률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북한만 처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한도 북한을 옹호하는 이적행위를 한다면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교수형 집행으로 처형하는 현행법률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하지 말라!
 
위장탈북이 아니라면, 북한정권을 반대하여 탈북하면서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사선을 넘고 탈북하여 정착한 그 소중한 목숨을 귀하게 여겨라! 그것이
몰살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남은 가족들과 친지들이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바라는
일 일 것이다. '비록 탈북자의 가족이나 친지로서 정치범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더라고
너만은 행복하게 잘살아야 한다' 라고...
 
대한민국은 북한정권을 반대하고 북한정권의 압제에서 사선을 넘고 탈출한 탈북자들을
대한민국 국민의 국적을 부여하며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한다!
 
그러나 그러한 남한이라해서 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입을 함부로 놀려 적국을 돕는 여적죄에 걸리면 사형을 면치 못한다!
그것이 남한의 현행법률이다.!
 
대한민국은 언제나 북한정권을 반대하는 탈북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위장탈북자는 리수근의 경우와 같이 사형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여적의 죄를 범하면 사형이 선고되어 교수형이 집행된다는 사실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