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특수군 일솔 대장
" 동무들의 임무는 청와대와 미 대사관을 쳐들어가서 요인들을 암살하고.교도소를 공격해서 죄수들을 석방하는 거라우 "
북한 특수군 부하들 " 알갔슴메다"
남한 파주 법원리의 야산에 도착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간 남한의 우씨 4형제와 마주치고 만다.
북한 특수군들은 기관총으로 위협하며 "우린 혁명당이야.... 너 쌀밥 1년에 얼마나 먹어 봤어 ? "
우씨 4형제 " 쌀밥은 하루에 세번 먹잖아요 "
북한 특수군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 저것들 날래 죽이라우 ".
다른 북한 특수군 " 겨울인데 땅이 얼어서 시체처리 하는거 번거롭지 않캇어 ? "...............
청와대까지 거리가 500미터 정도인 자하문 검문소까지 이동한 북한 특수군 31명은 검문을 받게 된다.
경찰 "당신들 뭐요 ? "
북한 특수군들 " 우리는 CIC 방첩 대원들인데 특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어서 길을 비켜라 "
경찰과 형사 그리고 경찰서장 등장해서 실랑이를 벌이던중 일반버스가 다가온다.
그 순간 북한 특수군들은 국군의 지원병력인줄 착각하고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시내버스에 3발을 날린다.
놀란 버스 승객들은 버스문을 박차고 황급히 뛰어 내렸다.........
인민군 특수군 소위 김신조는 동료들이 많이 택하지 않은 루트를 골랐다. 자하문을 넘어 세검정쪽으로 도망가려던 공비들은 뒤따라 내려오던 시내버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승객들이 미리 대피한 상태여서 피해는 없었다. 이들은 세검정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두 대의 버스에도 수류탄과 기총소사를 해대며 도망쳤다.
밤 10시30분경이었다. 야간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 부근까지 침투한 것은 성공했지만, 무고한 양민을 학살해 가며 유격전을 벌인 것만큼 좌충우돌 웃음이나는 어리석은 비정규전 사례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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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17일 개성을 출발한 북한 무장 특수부대원 31명은 국군 복장을 하고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을 했는데 4일만에 서울을 진입했다.
군사전문가의 말에 의하면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이동 속도에 비해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2배나 빠르 다고 한다.
[ 여기 내용은 자수를 한 북한 특수부대원 김신조의 증언 내용이다.]
총성이 퍼지자 청와대 외곽을 경비하던 수경사 30대대(대대장 전두환 중령) 병력들이 즉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김신조의 회고.
『한 명이 쓰러지는 걸 보고는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휘부가 무너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휴전선에서 청와대까지 내려왔다는 자부심이고 뭐고 다 없어졌고 동료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겁니다. 청와대고 작전이고 없었어요. 불과 5분 정도 교전한 것 같은데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던 겁니다. 일부는 오던 길을 거슬러 세검정 쪽으로 튀었고 일부는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탔고, 저는 경복고등학교 뒷담을 넘었지요. 인왕산을 타고 북으로 가려고 말입니다』
청와대 밖 하늘은 수경사 30대대에서 쏘아올린 조명탄으로 훤하게 밝아 있었다. 윤필용 방첩대장은 金聖恩 국방부 장관에게 전과와 피해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자하문에서 최초 총격전이 벌어져 종로경찰서장이 피격당해 순직했으며, 한 명은 생포했고 현재 청와대 외곽으로 몰아내며 추적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청와대로 속속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와대 쪽에서는 이후락 비서실장, 김시진 정보비서관 등이 정부쪽에서는 정일권 국무총리, 홍종철 공보부 장관, 신직수 검찰총장, 김현옥 서울시장, 이낙선 국세청장 등이 달려왔다. 각료들은 朴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중 『총성이 난 이상 시민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진상 발표를 신속히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난 朴대통령은 라디오를 켰으나 사건은 여전히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을 불러 『왜 방송이 늦어지고 있나』면서 『중계방송 하다시피 소상하게 보도해서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고 공비 수색에 국민의 협조를 얻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보도 관제는 22일 오전 7시를 기해 해제되었다......
『남조선 해방을 위해 남조선 수괴를 처단하는 막중임무』를 강조하던 124군 부대장의 말이 청년 엘리트 전사 김신조의 폐부에 아직도 비수처럼 꽂혀있었다.
그 부대장은 불과 1년반 전 남파돼 경기도 송추에서 고정간첩과 접선하려다 군경 포위망에 걸려 도주, 복부에 총상을 입고 5일만에 임진강을 건너 귀환한 경력을 가진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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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남한 대표 이후락이 북한을 방문 했을때 북한 김일성은 이렇게 사과를 했었다.
" 청와대 습격은 극렬분자들이 지들 맘대로 일으킨 사건이라오 박 대통령을 죽인다고 뭐 남조선이 없어 지겠소 ? 사건을 보고 받은 뒤 관련자들을 모두 해임 시켰소. 박 대통령에게는 미안하다고 꼭 전해 주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