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9일 월요일

박정희좌표

박정희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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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도의 환경 속에서 박정희는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를 포기하게 만든게 사실
 
@@ 박정희...전두환은 독재자 아님. 독재자 개념 착오.
 
@@ 김재규의 실체
<화제> 심수봉씨 "김재규 법정진술 거짓" 주장
주병진 쇼 (1993411) - [게스트: 심수봉]
[J 스페셜 - 월요인터뷰] 신재순 “10·26 당시, 난 딸 둔 이혼녀였다
 
@@ 졸업관련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 시절 불렀던 독립군가 (이씨왕조 후손 전 재산 헌납 신흥무관학교 독립군양성. 여운형1921러시아 적군 힘을 빌어 전멸. 편만주국 정부공보 육군군관학교 제2기 예과생도 채용고시 합격자39년합격404월입학. 수석 1942.3.23 예과졸업. 일본육사 3학년 편입. 일본육사57기졸업)
[PD수첩] 박정희 대통령 모든 것 (유증선 가짜칼, 백선엽 남로당 별로 활동 안, 김점곤 공산당 아니, 혼동시대, 남로당 사건 이혼, 부인가출, 무인의 길, 밀어붙이기식, 필요악, 구상시인, 군대부관 원병오 예행연습, 함수용 경호원 이름을 알다, 김두영 청소부까지 챙겨, 육영수 1974815일 광복절행사, 시신안고 통곡, 소복한 아카시아 밥, 어머니의 사랑, 김일영 산업화 빈곤탈출, 부패척결 부하들 잘해 관대, 개인적 치부는 안함,
 
@@ 일본육사이력
일본육사출신 독립군들장개석: 일본군 근무(1909~1911)김경천: 일본 육사 기병과 수석 졸업이청천: 신흥무관학교 교성대장 시절 지청천이란 이름을 사용하셨던 이청천은 일본육사 출신, 광복군 총사령관.청년 50여명:1944 광복군이 창설되었으나 인원도 많이 못하여 얼마동안을 유명무실하게 지내다가 문득 한 사건이 생겼으니 그것은 50 여명 청년이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 정청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들은 우리 대학생들이 학병으로 일본군대에 편입되어 중국 전선에 출전하였다가 탈주하여 안휘성 부양의 광복군 제 3 지대를 찾어온것을 지대장 김 학규 장군이 보낸 것이었다. - 중략-
 
@@ 공산주의가 아니다
CIA 당시 보고서 "박정희, 공산주의 아니다5·16은 애국적 민족주의적 쿠데타"
CIA 보고서 "박정희, 기회주의자나 공산주의 잠복세력 아니다" 대통령 일일보고에서 드러나..당시 버거 주한미대사 본국 보고
박정희 공산주의 아니다? CIA 기밀 문서 공개!
CIA 보고서 "박정희, 기회주의자나 공산주의 잠복세력 아니다" 대통령 일일보고에서 드러나..당시 버거 주한미대사 본국 보고
미국립문서보관서 OSS 요원 명단 공개 항일 투쟁 한인들 미 OSS(CIA 전신)서 활발한 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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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광복군 비밀 요원
박정희는 독립군이였다,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며 부른 독립군가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 시절 불렀던 독립군가
나의 조국 - 박정희 대통령 작사 작곡
 
박정희가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며 부른 독립군가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후렴)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 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건가 정의의 날센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기리 너와 나로다.
너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 되고 나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아니냐 빛내리 너와 나로다.압록강과 두만강을 뛰어 건너라. 악독한 원수무리 쓸어 몰아라 잃었던 조국강산 회복하는날 만세를 불러보세.
   위 노래 가사는 박정희가 만주국군 소위로 복무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을 때 부른 독립군가이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서 광복군에 대하여 해박한 송남헌은 강만길이 추앙하는 인물이다. 송남헌 본인이 5.16군사혁명 직후 2년간의 옥살이 1985년 전혀 다른 입장의 송남헌 역시 박정희 중위는 독립군이었다고 기록
1967광복군 박영만이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들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박정희 중위는 독립군이었다. 만주국군 내 조선인 장교들이 1945829일 국내진공을 위한 비밀 거사 계획을 갖고 있었으며 박정희도 참여하였음을 그는 그의 저서 "해방 3년사" 26쪽에서
1기생 이기건에게 "일제는 곧 망합니다. 우리는 독립하고야 말 것입니다" 라고 되풀이하여 말하곤 했습니다. 한국인들끼리 술자리 모임에서 어느 날은 벌떡 일어나 "선배님들, 이런 노래 모르시지요." 라며 주먹질을 하면서 독립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박정희의 친구인 이한림: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끔 둘이 만나면 조국의 비통한 현실을 개탄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결심을 밝히기도 하였다. 우리 사이는 혈우라고 할 만했다"고 기록한다.
만주군관학교시절 선배의 증언: 그가 박정희에게 '자네는 왜 여기 왔는가'라고 물었 을 때, 박정희는 "왜놈 보기 싫어 왔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일제는 곧 망합니다. 우리는 독립하고야 말 것 입니다"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이섭준: 박정희는 특히 2.26사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합니다. 박정희는 "이런시대에 우리가 배울 것은 군사학뿐이다. 우리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독립은 "혼자 사는 것이다. 남의 간 섭 안 받고 우리 스스로 사는 것이다"고 했다고 합니다
19454박승환,박준호,이상열,최창륜과 나는 [조선건국동맹 만주분맹 군사 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때 봉천비행단에는 박임항과 최창륜이 있었는데 최창륜 이 2기 대표로 박정희를 추천했다. 나의 계급은 만군대위였고 그는 소위 시절이 다. 박정희는 반벽산(半壁山)에서 근무했고 나는 그곳에서 가까운 금주헌병대에 있었기 때문에 몇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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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빨들의 거짓말...
연변통신 1980 년 육군본부의 창군전사(創軍前史)’가 발행된 이 책은 지금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실과 군사연구소,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등에 비치돼 군사(軍史) 연구 자료로 쓰이고 있다.
김정균은 상해임정에서 비밀첩보원을 하던 김구 선생님의 수족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남의사 소속의 왕정국, 산서성 총사령관 염석산과 더불어 독립 운동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백범일지에서 나와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 하였습니다.
1937 7 월 노구교 사건 ...1944 이 모양으로 광복군이 창설되었으나 인원도 많이 못하여 얼마동안을 유명무실하게 지내다가 문득 한 사건이 생겼으니 그것은 50 여명 청년이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 정청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원기 노인은 그의 아버지(이우인· 만주일보발행인)가 문중 재산을 털어서 1920년대 만주에서 독립운동.... 박정희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전투행위 자체를 한 적이 없거든요. 만리장성 북쪽 러허성(熱河省)에서 만주군 제8(연대) 소속으로 근무했는데 보직이 부관 겸 기수였습니다. 만일 제가 광복군과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에 계속 몰렸더라면 광복군 진영으로 탈출했을 것입니다.”
박정희에게 배운 이영태 :조선어 시간. 우리 나라의 태극기를 가르쳐 주셨고, 복도에 입초를 세우시고 우리 나라 역사를 가르쳐 주셨으며.. 조국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자주 우시는 것을 목격했다.
김구 선생은 19393월 어느날 청년 박정희를 만났다.
김정균은 상해임정에서 비밀첩보원을 하던 김구 선생님의 수족과도 같은 분이었다. 그때 박정희는 20대 초반으로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김정균의 일기는 적는다. 신영학을 통해 박정희를 소개받은 김정균은 이 청년이 뚜렷한 역사 의식과 조국 광복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고는 김구 선생에게 소개를 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
19393월 어느날 청년 박정희를 만났다. 그때 박정희는 20대 초반으로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청년
1937 7 월 한국 광복군 창설 노구교 사건이 일어나자 중국은 항전을 개시 하였다
일본군대에서 탈출하여 온 때는 바로 1944 년도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김정균의 일지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1945428김우전(金祐銓·82) 광복회장이 광복군 연락장교 자격으로 중국 남부 쿤밍(昆明) 주둔 미국의 전략첩보국(OSS)에 파견근무할 때인 1945428일 작성
광복투쟁 전단 첫 공개 "일본군내 韓人은 때를 기다려라" 그 전단은 아직 전민족적으로 총궐기할 때는 아니다. 때를 기다려라. 제군들은 일군 내에서 작전을 방해하고 손상시키는 게 임무다. 자신이나 동포에게 위험이 없는 범위에서 활동하라. 겉으로는 친일(활동)을 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박정희와 김구의 인연
조경한
[독자페이지]친일파 청산, 신중히 옥석 가려야
[독자페이지]친일파 청산, 옥석 가려야 입력 2004-07-24 13:34:00, 수정 2004-07-24 13:34:00
광복 후 김구 등 임정 요인과 귀국 건국공로훈장 수여 백강 조경한 선생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박 소좌의 도움은 컸다.
백강 조경한 선생이 인정한 박정희
장창국 '육사 졸업생역시 박정희가 비밀광복군이었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강만길이 추앙하는 송남헌(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비서 송남헌) 해방3년사
박정희 대통령의 본토진격작전 기록 발견 송남헌, 이순희, 이영태, 주영배, 황광실
중국인으로서 박정희의 동기생이었던 고경인씨의 증언으로 확증된다...박정희는 헤어지면서 경상도 선산 고향집 주소를 써주면서 한국이 독립하면 서로 왕래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수중에 있던 돈 385원을 건넸는데 그는 자기가 신고 있던 장교용 붉은 장화를 대신 벗어주더라.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건국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낙선 중령의 회고록 박정희가 40년에 교사를 그만두었다 고로 39년에 만주에 가지 않았으니 http://m.blog.daum.net/gangnamavanced/812
[단독]OSS 한국요원 명단 분석日語·번역, 감청 맡아 국립문서보관소 공개 OSS 한국요원 명단 분석 1942년 창립 초기에는 일본어에 능통한 한국계 인사들이 미 육군과 해군, 공군 등에서 차출됐다.
[단독] 미국 OSS에 항일투쟁 '한국그룹' 있었다함용준 80명 활약 OSS 한국요원 명단 분석日語·번역, 감청 맡아
[단독]OSS 한국요원 명단 분석日語·번역, 감청 맡아국립문서보관소 공개 OSS 한국요원 명단 분석 이승만 증
[건국 이야기] 한국인의 OSS 참여와 대일본 선전포고 "자주독립을 위해 대일본 선전포고와 동시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야 한다" 이승만 증
만주국군 군관 박정희는 광복군 첩보장교였다
비밀광복군설의 원전(原典)’1967년 박영만(사망)씨가 쓴 소설 광복군이다. 광복군 출신인 박씨는 이 책에서 박정희의 일제 말기 행적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소상히 묘사했다. ‘광복군에 따르면 만주국군 소위 박정희는 19452월 광복군에 가담한 뒤 뜻이 맞는 한국인 동료들과 부대 안에 비밀조직을 만들고 훈련 때면 사병들에게 우회적 방식으로 독립사상도 고취했다. 이어 광복군 제3지대장이던 김학규 장군으로부터 부대를 장악하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에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기하던 중 일제가 예상보다 빨리 항복하는 바람에 거사 시기를 놓쳤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이란 그분의 위치가 위치인만큼 오해를 사기 쉬워 도에 넘칠 정도로 그분에 관한 것을 파고들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직접 본인의 교열까지 받았다. 박정희 동지는 격무 속에서도 원고를 자세히 읽어 주셨으며, 몇 군데 고쳐 달라는 당부까지 하셨다.”고 저자는 광복군서문에 썼다. 비밀광복군설에 반대하는 자들은 박 대통령이 책을 받으신 다음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고 화를 내셨다는 풍문을 인용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비밀광복군설 공개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비밀광복군이 없었는가? 미 국방성이 몇 해 전에 광복군 OSS 상륙훈련작전 영상물을 공개한데 이어, 지난 해에도 미 국립문서보관서가 광복군 OSS 요원들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비밀 깨고 75만쪽 분량 모두 공개 법조인 군인 학자 기자등 다양 직종
 
전략정보국OSS 항일투쟁을 위한 한국그룹 운영 김구, 장준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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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명예훼손 출판사대표 기소
생도대표 천황찬양 답사 아예 다른 사람 오카미 쇼히코. 날조 판명
@@ 우리 임시정부 아래 "대한 독립군"은 박정희가 1940년경에는 때려잡았다던 만주에는 없다. 1931년 만주자유시변 후 항일독립군이 아닌 동북항일련군(“비적(匪贼)”라고 불렀던 중국공산당이 이끌었던 항일련군)
자유시 참변과 민족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공산당 아닌 韓蘇 공산당에 전멸한 청산리 3500 영웅이여!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
2년전에 좌좀들의 온갖 날조선동자료 하나하나 다 반박해주다가 양이 너무 많아서 하나로 모아본 자료입니다. 좌파들의 박정희 관련 날조선동의 99%는 반박 가능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친일의혹
 
만주군 시절(1944~5) 본토진격작전(독립운동)
독립군토벌 날조
친일 의혹
박정희 혈서 기사, 조작 의혹 너무 짙다 1939331일자 만을 사본으로 보여줄 것이 아니라, 다른 일자의 신문과 같이 철해진 상태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신경군관학교는 193941일에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주국군간행위원회(滿洲國軍刊行委員會)와 난성회(蘭星會)1970년에 발간한 <滿洲國軍> 910페이지에는 1939310일 육군군관학교령이 재가, 공포되고 4월에 신경군관학교가 설립 전 합참의장 장창국의 <육사졸업생> 18 페이지에는 만주군관학교는 1939년 장춘(신경)에 세워진 4년제 사관학교.”라고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박정희 친일 추적에 전력 투구했던 오마이뉴스 정운현 기자의 책 <실록 군인 박정희>88페이지에도 신경군관학교는 봉천군관학교의 후신으로 1939년 수도인 신경에 세워진 정식 4년제 사관학교였다.”라고 요지부동의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혈서 조작'이라던 강용석·정미홍 패소
 
@@ 박정희대통령 연도별 행적기록
박정희
지만원- 5000년 역사 최고의지도자-박정희
 
@@ 박정희 대통령 생전 업적 및 육성 / FULL HD
박정희 대통령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연설
박정희 대통령 영애 박근혜 양 1977년 영상
박정희 대통령 월남 패망과 관련 특별담화(01/02)
박정희 연설 (ROK Armed Forces - President Park speech)
역사의 현장, '박정희 대통령 전용기 대공개'
[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9. CEO 박정희의 열가지 성공비결 - 박정희 대통령은 18년동안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었나
5부 눈물어린 독일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
"박정희, 독립군 도운 군인이란 증언 있다"
 
@@ 왜곡:
만주의 친일파 - 독립군 때려잡던 이 나라 위정자들의 화려한 과거 전력
남로당군사총책 박정희
'그것이 알고 싶다', 몽키하우스 뭐길래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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